생각이 삶이되길
봄을 기다리며 ('14.04.05)
한결같은
2014. 4. 5. 19:13
누군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묻는다면, 나는 단연 겨울을 꼽겠다. 12월의 설렘이 좋다. 솜털 같은 눈꽃송이가 대지를 하얗게 물들이는 겨울, 그리고 첫눈이 좋다. 첫눈 내리는 날이 성탄절을 일주일쯤 앞둔 어느 날이면 좋겠다. 교회당의 붉은 트리장식이 짙은 어둠을 아름답게 수놓는 밤이면 더 좋겠다.
"눈 온다!" 한마디 외침에 모두가 일제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주변은 금세 환희로 가득 찼다. 추위를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에게 12월은 봄이나 다름없다. 연탄 한 장을 걱정하는 산동네 마을의 촌로에게도 성탄절은 따스함이다. 신림동 고시촌의 더벅머리 총각에게도 창밖으로 내리는 첫 눈은 뜨거웠던 첫 사랑의 추억을 불러일으킬지니, 나는 추운 겨울이 선물해주는 이 따뜻함이 좋다.
지난 십이월의 성탄, 베들레헴에 갔다. 들판의 목자들이 천사로부터 예수님의 탄생소식을 접했다는 동굴이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옷깃을 세우는 추위가 엄습했지만, 나는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동굴 안을 어스름히 비추는 작은 촛불 하나, 함께 둘러앉은 벗들, 그리고 청명하게 울려 퍼지는 찬양아래, 인간을 사랑하시어 성육신하신 초월자의 사랑을 묵상했다. 내가 느낀 것은 만물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그 분의 온화한 체온이었다. 아, 봄을 가져온 사랑의 겨울 날! 예수님이 오신 날은, 아무리 추워도 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초록빛이 산등성이에 맺히고, 싱그러운 봄내음이 얼어있던 혈관을 풀리게 만든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우리네 마음을 어루만지어, 겨울의 추위를 까맣게 잊은 사람들은 산으로 들로 곧잘 놀러가곤 한다. 따뜻한 겨울이 가고 봄이 왔지마는, 나는 따뜻한 봄 속에 왠지 모를 겨울의 한기를 느낀다. 잠시 앓고 말 청춘의 열병 때문일까. 이 병이 누구나 한번쯤 겪는 인생의 통과의례라 해도, 봄을 느끼지 못하는 청춘보다 안타까운 존재는 없을 것이다.
한겨울에도 봄의 따뜻함을 느끼는 것은 절대자에게 귀의하는 나의 연약함 때문이오, 함께 걷는 벗들의 사랑 때문이지만, 한봄에도 봄을 만끽하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나의 강한 아집과 독선 때문이다. 예수님의 탄생이 우리에게 천국의 봄을 가져다주듯, 함께하는 이들의 체온을 통해 한겨울에도 봄의 따스함을 느끼듯, 나에게도 진정한 봄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아집과 독선 모두 내어버리고 안분지족(安分知足)할 평안의 봄. 그 봄이 오거들랑, 나는 한여름에라도 따뜻한 생기 넘치는 봄총각이 될 것이다.
나는 오늘도 봄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 봄, 내 눈 앞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