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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않은 길' 이야기
사랑하시어 오시었던 그분의 온기로 인해 마음만은 언제나 따뜻한 연말연시이다. 한 해의 끝을 맞아 모처럼 홀로 한적한 카페를 찾았다. 캐럴 송이 울려 퍼지고, 거리의 네온들은 붉고 하얀 성탄의 빛깔로 옷을 갈아입었다. 냉랭하게만 느껴지는 십이월의 서울이지만 마냥 차갑지만은 않다. 시끌벅적한 도시의 밤거리는, 계절의 변화에 무감각한 채 앞만 보고 달려가는 나의 삶에, 지나온 해 돌이킬 짧은 여유를 선물한다. 나의 이십 대, 마지막 나이를 살아갈 2015년이 이제 곧 이르더라도, 꽁꽁 언 겨울은 변함없이 그대로 일 테지만, 해의 변곡점을 앞둔 지금은 삶의 목적과 방향을 점검하기에 최고의 순간이다. 올해 만큼 내 삶에 많은 변화가 있던 해가 있었나 싶다. 일 년 전 이맘때와 비교해보면, 신분은 학생에서 직장인으..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화개장터~♬’ 흥얼거리는 노랫가락 속의 화개장터처럼 내가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이곳 또한 충청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곳으로 충청도 영동을 통하지 않고는 오를 수 없는 경상도 김천의 표고 733M ‘난함산통신소’이다. 좌로는 충청도가, 우로는 경상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 남들이 흔히들 말하는 춘삼월 호시절까지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이곳은 간부 2명과 병사 5명이 옹기종이 모여앉아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곳이다. 내가 군에 오기 전, 아버지를 따라 봄과 가을로 등산을 한 것 처럼, 대다수의 사람들도 종종 등산을 한다. 오르는 과정은 쉽지 않지만, 통해 높은 곳에 올랐을 때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체력, 성취감, 그리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
수 일 전, 삼십 수 년의 인생을 살면서도 아직 융프라우에 가본 적이 없다는 스위스 친구를 만났다. 나는 비록 유럽여행을 가 본 적이 없지마는, 누구든 유럽여행을 간다면 꼭 한 번 쯤 들른다는 알프스의 융프라우를 두고 '꼭 가봐야해?' 하는 희안한 스위스 친구의 말.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다지 희안할 것도, 특이할 것도 없는 것이, 오랜 세월을 전주에서 살면서 한옥마을을 '딱 한 번'만 가봤다는 아주 가까운 친구가 내게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 뿐인가, 평생을 '엠파이어 씨티' 뉴욕에 살면서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한 발짝도 들여놓은 적이 없다는 아저씨를 만난 적도 있었으니깐. 다가오는 겨울(?)의 문턱, 지중해의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나는, 융프라우에 아직 가보지 못한 스위스 친구를 떠올렸다..
예수님은 걷고 또 걸으셨다. 성경을 읽어보면 그렇다. 고작 삼년을 사역하셨을 뿐이지만, 예수님은 정말로 많이 걸으셨다. 갈릴리에서 머무시고, 예루살렘으로 또 옮기셨다.(예루살렘과 갈릴리 사이의 거리는 길이 잘 닦인 오늘날을 가준으로 약 160km, 구글맵 기준 도보로 하루 하고 반나절을 쉬지않고 온전히 걸어야 하는 거리다.) 나사렛으로 가시고 또 사마리아로도 가셨다. 명절이면 어디에 계셨든 또 예루살렘에 오르셨고, 가끔은 요단을 건너 어딘가로 향하시기도 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님의 행적과 이동경로를 단 한 두줄로 읽을 뿐이지만, 실로 그 거리는 우리가 이웃동네 마실가듯 걸을 수 있는 거리가 결코 아니다. 내일부터 유대인,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 하나인 초막절이 시작된다. 초막절은 마치 우리의 구정과..
1. "한 번 뿐인 인생, 어떻게 하면 정말 가치있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자못 철학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곰곰이 던지고 있노라니, 많은 생각과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한 가지에 생각이 집중된다. 끝내 귀결되는 결론. "올바른 기준을 갖는 것" 2.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부의 많고 적음으로 평가할 수 없다.', '신분의 높고 낮음으로 지나온 삶의 척도를 평가 할 수 없다.' 모두가 공감하는 이 두 가지 전제가 사실이라면, '올바른 가치와 기준을 갖는 것'은 보편적으로 인지하는 성공의 기준, '부', '명예'로 향하는 나침반은 아니어도, 분명히 '가치있고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확고한 기준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물론 '올바른 기준'에 따른 '올바른 선택과 행동'이 수반..
1. 태국부터 홍콩, 중국까지 아우르는 그리 짧지 않은 선교여행의 중간. 지난 1월 중순경, 나는 중국 남부지방의 대도시 '심천'에 있었다. 찌는듯한 무더위의 태국도 지나온 여정, 여행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지만, 현지인들은 춥다고들 말하는 1월의 심천의 날씨가 내게는 온화하게만 느껴졌다. 하와이를 거쳐 만난 한국에서의 강렬한 한파가 아직 잊혀지지 않은듯 했다. 2. 대륙 속의 대도시, 심천은 상상 이상이었다. 거리에 즐비한 명품관들과 하늘로 뻗은 빌딩숲은 우리들의 경탄을 자아냈다. 명동이나 신촌이상의 인파로 북적이던 그 곳, 도시의 심장부에 오밀조밀 모여있던 우리에게, 중요한 한가지의 미션이 주어졌다. 3. '모두, 각 세 권의 성경책을 저들에게 전하라!' 4. 아직도 진리를 핍박하는 땅, 복음의 불..
1. 그 어떤 새로운 곳이라도 고작 보름 남짓한 시간이면 익숙한 삶이 되버린다. 익숙해진 곳, 그렇게 정든 곳을 떠나는 경험 그리고 새로운 곳에 정착하는 경험, 이번이 다섯번째다. 조심스레 겨울을 맞이하던 캐나다, 벤쿠버를 떠나와 3개월만에 다시 찾은 미국땅, 비행기밖으로 첫발을 내딛으며 느낀 숨막히던 무더위의 하와이, 이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삶이 되어버렸다. 2. 지금까지는 항상 새로운 곳에 적응하기 무섭게 또 다른 새로운 곳에 대한 꿈을 꾸며 준비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다음 갈 곳을 찾아야 했고, 기도해야했고, 알아보며 준비할 것들이 항상 많이 있어 분주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준비할 '새로운 곳'은 없어져 버렸다. 그리운 가족, 친구, 공동체, 너무나도 친숙하고 익숙한 장소로 돌아가는 것 뿐. 3..
얼마 전, 고향으로 돌아가는 친구들에게 짧은 편지 한 통을 건넨 일이 있다. 예정돼 있던 날이었지만, 이별은 너무 갑작스레 찾아온듯했다. 글이 아니면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잘 표현 못할세라, 정신없이 이별의 편지 몇 장을 일필휘지로 적었다. 볼품없는 글씨와 두서 없는 내용, 마음을 담았다고 하기엔 부끄러운, 그런 편지였다. 무슨 반응이나 답장을 기대하고 적은 편지도 아니라서, 조용히 넘어가려 했는데, 방금 전 짧은 통화에 친구는 꼭 그 편지를 언급한다. 친구는 울었드랬다. 정말 별 것 아닌 한 통의 편지에 눈물지었다던 친구의 말, 그 한 마디가 나에게 따듯한 봄 기운을 느끼게 했다. 다행이었다. 그런 편지라도 아니었다면, 그들에게 존재의 고마움과 감사를 쉽게 표현하지 못했을터였다. 가끔씩 누군가에게 편지..
음악은 기억을 담는다. 음악은 장소를 담기도 하고, 시간을 담기도 한다. 한 곡의 노래로 기억되는 사람도 있다. 음악에는 슬픔과 기쁨, 환희와 절망 따위의 감정, 기억이 담길 수도 있을 것이다. 음악은 영혼의 마음을 어루만지기도 한다. 좋은 클래식 음악 한 곡은 사람의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 준다. 신령과 진정으로 부르는 찬양 한 곡은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로한다. 추억을 되살리는 음악, 상처를 치유하는 음악, 음악은 분명 힘이 있다. 비오는 날의 토론토, 나이아가라 폭포에 간적이 있다. 축축히 젖은 날씨에 동반자 하나 없이 떠나는 여행, 솔직히 썩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다. 우산까지 사서쓰고 떠나기로 결정한 것은, 비오는 날의 나이아가라에는 평소에 느낄 수 없는 운치가 있다고 해서였다. 폭포는 슬퍼보일 거라..
1. 캐나다의 작은 시골마을에 있는 카페에서 한달포쯤 일을 한 적이 있다. 섬겼다는 말이 옳을거다. 선교를 위해 운영되는 비영리 카페였으니깐. 총 책임자부터 나 같은 발렌티어까지 일하는 모두가 급여 한 푼없었다. 일하는 사람 모두는 개별적인 후원자를 가지고 있는, 오히려 카페를 위해 지출하며 일하는 선교사였다. 하루 고객이라고 해봐야 겨우 육칠십여명을 오가는 작은 카페. 인건비야 전혀 들지 않는다지만, 그렇다고 수익이 많을 수도 없었다. 여하튼 그렇게 발생한 얼마 안되는 카페의 수익은 전적으로 카페 운영과 지역 커뮤니티 선교, 그리고 북한의 고아들을 구제하는 목적에만 사용되었다. 2. 기존에 교회가 세워져 있던 자리, 교회를 리모델링하여 세워진 카페였다. 수 년전, 교회를 새롭게 책임지게 된 사람 역시 ..